<최성운의 사고 실험> 료

최성운의 사고실험의 ‘료’의 인터뷰를 봤다. 

나도 다른데 너도 달라. 나도 다르고 너도 다르고 쟤도 다르고 우리 다 달라. 그래서 너무 신나
그래서 너무 신나????? 맙소사 그래서 너무 신나다니…..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는거지?????? 

나도 브랜딩을 준비하며 나다워지세요 라는 가치를 내세웠다. 왜 이 가치를 내세웠을까, 어떤 배경에서 시작됐을까를 생각해보면 연민의 마음에서 출발했던 것 같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내 모습을 자꾸만 잃어가는 나 자신이 너무 안타까웠고, 주변을 돌아보니 나와 비슷한 아픔, 답답함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구나를 깨달았다. 동시에 이 사회가 더욱 안타까워졌다. 대한민국 평균사회. 사회가 정한 평균에 미치지 못했을 때 느끼는 박탈감 및 도태감, 내가 모자란 사람인가에 대한 자기의심과 자격지심, 나아가 피해의식, 자포자기, 자기연민 등 많은 사람들이 이런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워서(아니 사실은 나 자신이 가장 안타까워서) 좀 더 ‘나’다운 삶을 살아보세요. 라는 가치를 내세웠는데….

료는 그래서 너무 신나 라니… 이건 찐이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하던가
인간이 다 달라서 신난다면.. 어떤 한 인간을 존재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이 너무 쉬울 것이다. 그래서 그 깊이가 다를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단순히 연민에 기인하여 다름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의 깊이는 얕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답지 못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근데 알고보니 이 사람이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라면 혹은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띄고 있다면 과연 그 사람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존중하고 응원할 수 있을까?

이에 반해, 나와 다른 사람을 볼 때 흥미로움을 느끼는 성향의 사람은 나와 180도 다른 인간을 마주할 때 그 사람 자체로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아닌가! 그리고 ‘다름’을 ‘신나’의 관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애초에 사람을 바라보는 데 있어 필터가 아예 없을 것이다. 타인을 대할 때 나랑 다르다는 사실이 신나고/재미나고/흥미롭고/긍정적인 관점으로 다가오니 더 알아가고 싶을 것이고, 더 깊이있게 그 사람을 관찰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전자와 후자가 타인과의 다름을 인정하는 깊이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료님은 찐이다.. 

사실 나는 ‘나다워지세요’라는 가치를 추구하고 내세웠지만 사실은  타인에게 배제적인 사람이었다. 특히나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바라볼 때 편견을 가지고 바라봤고, 그러한 사람을 내 곁에 두지도 않을 뿐더러, 그걸 넘어서 특이하고 이상하다고 판단해왔던 것 같다.

그런 내가 ‘나다워지세요’라는 슬로건을 내세울 수 있을까? 단순히 안타까운 마음에 기반해서 내가 내 브랜딩의 가치를 그걸로 내세울 수 있을까? 실제로 나는 사람들이 나 다워지기를 바랐던 게 맞을까? 내가 그걸 내세울 자격이 되는 사람인가? 나는 진짜가 아닌 가짜의 모습을 띄고 있던 건 아닐까?

앞으로 어떤 태도를 가져야할지 배웠다. 실제로 요즘은 골프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 세계가 넓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실제로 궁금하다. 

나는 지금 발전하고 있다. 내 편협했던 시야가, 좁았던 나의 세상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더 세상 밖으로 나와 이리저리 치이며 만져대며 많은 것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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